한확, 알고리즘 :: 2010/03/12 00:02작년 5월부터 시작한 트위터는 나에게 있어,
140자 이내로 생각을 표현하는 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트위터의 140자 제한은 표현을 '제약'한다. 그런데, 표현의 제약은 참 묘한 매력을 갖고 있다. 생각을 압축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키워드만 살아남게 되는 과정은 마치 다윈의 적자생존의 진화 게임을 방불케 한다. 140자를 훌쩍 넘는 초기 문장을 구성하는 키워드 간의 격한 경쟁이 일어나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키워드들과의 합종연횡이 빠른 속도로 전개된다. 그런 프로세스를 통해 writer의 의도에 대해 가장 높은 적합도를 보이는 키워드 일부가 살아남게 된다. 표현의 제약 때문에 허튼 표현을 쓸 수가 없게 되고 꼭 필요한 단어 위주로 생각을 구조화하게 된다. 제약은 우선순위를 낳고 우선순위는 내 생각을 명확히 표현하게 해준다. 트위터의 140자 제한은 '생각 확장'을 가능케 한다. 트위터 140자 제한은 표현 제약으로 인한 오해를 낳기도 한다. 심지언 나조차 내가 적은 트윗을 나중에 읽을 때 오해할 때가 있을 정도다.^^ 그런데, 오해는 의미의 확장으로 재인식될 수도 있다. 내가 의도한 취지를 압축해서 표현한 글을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내 의도와 다른 쪽으로 해석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건 글에 사용한 골격과 키워드가 확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연 설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생각을 특정 방향으로 확 고정시켜 버리지 않을 수 있고, 적당한 모호함을 갖는 트윗 메시지는 추후에 다른 의미로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확장이 가능하다는 것은 트위터의 중요한 매력 중의 하나이다. 아마도, 모호함은 혁신의 이웃사촌 쯤은 될 것이다. 고로, 트위터는 생각 확장과 혁신을 자극하는 플랫폼이다. 키워드 중심으로 골격만 잡기 때문이다. 트위터 140자 제한은 컨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결핍'을 생성한다. 트윗을 하면서 느끼는 재미있는 감정. 적고 적고 또 적어도 뭔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런 느낌이 지속되기 때문에 트윗을 계속 하게 되는 것 같다. 함축적이고 다소 모호한 메시지를 계속 생성한다는 것은 사고의 수렴보다는 사고의 확산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핵심 키워드만으로 트윗을 날리다 보니, 핵심 키워드와 핵심 키워드 간의 중력이 작용하면서 새로운 컨텍스트가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컨텐츠와 컨텐츠가 만나 컨텍스트를 만들어 내고 그 컨텍스트는 다른 컨텍스트/컨텐츠와 만나 새로운 컨텍스트를 낳게 되고.. 트위터는 사람과 사람 간의 느슨한 네트워크이기 전에 생각을 구성하는 키워드와 키워드 간의 느슨한 네트워크이기도 하다. 뭔가에 대한 지속되는 결핍감은 나를, 타인을, 나와 타인 사이를 채우면서 트윗 타임라인은 그렇게 흘러만 간다. 표현의 제약을 통한 생각의 압축, 생각의 압축을 통한 생각의 확장, 생각의 확장을 향한 끝없는 결핍감. 트위터는 확실히 매력적이다. 내게 있어 트위터는 대화의 장이라기 보다는 나의 생각을 압축하고 구조화하고 확장하는 생각 수련의 플랫폼인 것 같다. 한계를 통한 확장. '한확(限擴), 알고리즘'. ^^ PS 1. 트위터의 티핑 포인트는 어디에 있을까? 트위터의 핵심가치가 '쌍방향 대화'가 아니라 '일방향 Follow', '혼잣말에 가까운 트윗"이란 것을 인정하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싸이월드 프레임으로 트위터를 바라보면, 트위터의 핵심가치에 대해 혼동하기 쉽다 일방향 follow가 기본 골격인 서비스에서 마주보기와 쌍방향 대화를 추구하는 건 무리다. ^^ PS 2. 관련 포스트 휘발,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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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애, 알고리즘 :: 2010/03/10 00:00독애: 애플 읽기, 능동적 독서와 애플 혁신과의 닮은 점
해체를 통해 자신만의 맥락을 재구성한다. 능동적 독서가는 저자의 컨텐츠를 레고 블록처럼 해체시켜 다른 레고 블록과의 조합을 통해 자신만의 맥락을 창출한다. 애플은 이통사와 제조사간에 견고하게 구성되어 있던 모바일 가치사슬을 해체해서 애플만의 밸류 체인을 구성했다. 그리고, 철저히 애플이란 '이기적 유전자'에 최적화된 형태로 기존 밸류 체인을 완전히 분해한 후에 애플 DNA에 최적화된 모습으로 전면 재구축했다. 새롭게 창조된 애플 생태계 기반 위에서 애플 gene(유전자)는 영속을 향한 움직임을 지속할 것이다. 애플만의 맥락이 작동하는 모바일 밸류 체인에 의해 애플의 직간접 경쟁자들이 의존하고 있던 밸류 체인은 교란되고 파괴되어 간다. 구글, 아마존은 모두 경쟁사업자의 밸류체인을 교란/파괴하면서 웹2.0이 되었다. 시장에 새롭고 혁신적인 가치를 제공하려면 기존의 경쟁자를 최대한 진부화시키는 밸류 체인을 구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개방'은 강력한 밸류 체인을 구성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기존에 존재하는 진부한 블록을 창의적으로 조합한다. 애플은 기존 사용자 니즈(이동성스토리지+디지털뮤직플레이)와 기존 솔루션(포터블디스크드라이브)을 레고 블록 맞추듯 창의적으로 조합하여 아이팟을 탄생시켰다. 세상에 사용자 니즈 블록과 솔루션블록은 널리고 널렸다. 문제는 이 2개 side를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애플은 여기서 결과적으로 보면 뻔할 수도 있을 만큼 자명한 어프로치를 통해 본질적인 사용자 니즈를 관통했다. 그저 음악을 편하게 다운로드 받아서 MP3 플레이어에서 듣고 싶어하는 소비자의 본질적인 요구. 애플은 소비자의 본질적인 요구에 꾸역꾸역 응했을 뿐이다. 능동적 독서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책을 많이 읽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기존에 읽었던 책들에 존재하는 통찰을 잘 기억하고 있다가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기존에 읽었던 책들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 고리를 날카롭게 의식 수면 위로 올리는 창의적 레고 블록 맞추기 놀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창의력은 기존에 진부하다고 널리 알려진 컨셉들을 창의적으로 조합하는 능력이다. 자신만의 세계관을 갖고 있다. 애플은 망, H/W, S/W, 컨텐츠, 서비스 등의 진부한 개념을 조롱하듯 넘나들며, 고루한 개념의 늪에 빠져 있는 주변 사업자들을 몽조리 Commodity(범용품)으로 전락시키는 자신만의 Value Network를 구축하고 있다. 애플의 혁신은 H/W, S/W, Service, Network란 영역 구분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렇게 기존에 잘 정리되어 있는 듯한 경계를 캐무시하며 넘나든다는 것은 애플이 자신만의 세계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Value(가치)는 결국 '세상에 대한 이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애플이 세상에 제공하는 value는 '애플이 이해한 세상'의 반영일 뿐이다. 세상을 이해한 크기. 딱 그만큼만 세상에 밸류를 제공하게 된다. 애플이 이해한 세상 속에선 기존에 세팅되어 있던 구조와 경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독서도 마찬가지이다. 권 단위의 책이란 경계, 저자 인식의 한계 속에 갇혀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 책과 책 사이, 컨텐츠와 컨텐츠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관(觀)'을 키워나가야 한다. 애플을 읽으면서, 독서에 대한 자세를 가다듬게 된다. 애플처럼 독서하기. ^^ PS. 관련 포스트 주관, 알고리즘 범용,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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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열, 알고리즘 :: 2010/03/08 00:08타존, 알고리즘에서 아래와 같이 적은 바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부/지위와 같은 스펙을 통해 물질적 성공을 규격화/정량화하고 상호 간의 비교를 용이하게 한다. 성공의 크기가 표면적으로 드러나게 되면서 여기에 집착하는 '속물근성'이 등장하게 된다. (속물: 사람의 작은 일부분만 갖고 사람됨 전체를 정의해 버리는 자) 인간 세상은 거대한 비교플랫폼이다.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잡은 속물근성이 사람들 마음 속에 깊숙히 침투한 이상, 세상을 살아가면서 '비교'라는 거대한 화두를 피해가기가 참 어렵다. 학교에서는 성적으로 비교를 하고, 사회에서는 부와 명예으로 비교를 하고.. 그런데, 세상이란 비교 플랫폼은 참 재미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비교라는 플랫폼의 기본 로직을 충실히 따르는자가 결국 '루저'라는 거다. 비교의 승부처는 비교 후 우열을 가리는 순간이 아니다. 남과의 비교 후 열등함을 인정할 때 진 것이 아니라 남과의 비교 자체를 시작할때 이미 진거다. 모두 저마다의 가치를 타고 난 인간을 기계적인 잣대에 억지로 구겨 넣고 그 안에서 획일적이고 건조한 비교를 하게 되는 것 자체가 인간 소외를 의미하는 것이니까. 남과의 비교를 많이 의식하거나 비교에 몰입한다는 건, 내 안에 나만의 차별점이 별로 존재하지 않거나 아예 없다는 걸 의미한다. 자고로, 차별화된 것은 비교가 불가능하다. 차별화되어 있지 않으니까 비교하고 싶어지는 것이고 비교에 빠지다 보면, 평생 비교의 굴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인간 Commodity(범용품)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남과의 우열을 가리는 '비교'의 늪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비교/우열이란 개념은 사람이 아닌 범용상품 시장에서나 성립가능하다. 사람을 범용상품화하고 상품스펙으로 비교하게 하는 자본주의 알고리즘을 종교로까지 숭배할 필요는 없다. 범용상품적인 '우열'이란 잣대보다는, 나를 '나'이게 만드는 '차이'가 뭔지에 집중해야 한다. 좋고 나쁘다, 나음과 못함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다르다'의 문제인 것이다. 나만의 유니크한 '차이'를 지속적으로 탐색하고 발견/발전시켜 나가는 놀이와도 같은 노력이 중요하다. 결국, 행복은 우열 프레임에 얼마나 덜 갇혀 있고, 나만의 '차이'를 얼마나 즐길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인간은 상품이 아니다. 아무리 모든 것을 상품화 시키는 자본주의 알고리즘이 강력하다고 해도 스스로 상품이 되고자 인생 전체를 걸고 열정적으로 애쓸 필요는 없는 것이다. ^^ 제허, 알고리즘 PS. 관련 포스트 타존, 알고리즘 소외, 알고리즘 제허, 알고리즘 비교, 알고리즘 범용,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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